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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는 살아있다. 고대국가 대가야의 삶이 흐르는 역사의 현장


왕들의 무덤

특징과 변화과정

대가야 무덤의 특징

주로 뒤에는 산성이 있고 앞에는 마을과 평야가 내려다보이는 산마루와 산줄기에 위치한다. 왕 무덤은 한가운데 왕이 묻히는 큰 돌방을 하나 만들고, 그 주위에 껴묻거리를 넣는 돌방 한두 개와 여러 개의 순장자들의 무덤을 만들었다. 돌방은 길이에 비해 폭이 아주 좁은 긴 네모꼴인데, 깬 돌을 차곡차곡 쌓아 벽을 만들고 그 위에는 큰 뚜껑돌을 여러 장 이어 덮었다. 무덤 둘레에는 둥글게 돌을 돌리고 그 안에 성질이 다른 흙을 번갈아 다져 가며 봉분을 높게 쌓았다.
지산리30호분

지산리30호분

지산리고분군의 가장 아래쪽에 해당하는 왕릉전시관 앞에 있으며 봉분의 밑지름은 18m 정도이다. 1994년 발굴조사를 했는데, 가운데 큰 돌방을 만들고 그 옆에 딸린 돌방과 순장자의 무덤을 만들었다. 그리고 가운데 돌방의 바닥 아래에 또다시 돌덧널이 만들어져 있어 무덤이 2층으로 되어 있다. 한편 순장자의 무덤에서는 어린아이 뼈와 금동관이 나왔다. 그리고 선사시대의 바위그림이 새겨진 돌을 깨어와 무덤의 뚜껑돌로 사용하였다.
지산리32~35호분

지산리32~35호분

지산리고분군의 능선 중간부분에 있는 무덤으로 모두 봉분 밑지름이 10~15m 정도 되는 것이다. 1978년 발굴조사에서 32호분에서는 금동관과 갑옷ㆍ투구 등이 출토되었고, 또 그 옆의 무덤에서도 봉황머리와 은으로 새긴 넝쿨무늬가 장식된 큰칼이 나왔다. 산 위쪽에 있는 큰 왕릉들 보다는 조금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되며, 주변에는 이보다 약간 규모가 작은 무덤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지산리44호분

지산리44호분

지산리고분군에서 규모가 큰 것에 속하며 능선 정상의 바로 아래에 있다. 1977년에 발굴조사를 하였는데 무덤의 밑지름이 27m에 이르며 가운데에 왕이 묻힌 큰 돌방이 있고, 그 남쪽과 서쪽에 껴묻거리를 넣는 딸린 돌방이 2개 있다. 그리고 그 주위에 작은 순장자의 무덤이 32개나 있다. 따라서 이 무덤은 모두 40명 이상의 사람이 한꺼번에 묻힌 왕릉으로 추정되며 대가야가 가장 국력이 컸을 때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지산리45호분

지산리45호분

지산리44호분 바로 위에 있으며 역시 1977년에 발굴조사를 하였는데 무덤의 밑지름이 28m에 이른다. 가운데 왕이 묻히는 큰 돌방을 만들고 그 옆에 껴묻거리를 넣는 딸린 돌방을 마련한 다음, 주변에 11개의 순장자 들이 묻히는 무덤이 만들어졌다. 순장자는 14명 이상이었다.

지산리고분군이 만들어진 순서 - 산꼭대기 가장 큰 무덤들이 맨 나중에 만들어졌다

200여개가 넘는 지산리고분군의 대가야 무덤들은 모두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대체로 아래쪽에 있는 무덤들이 먼저 만들어졌고 차츰 능선의 높은 쪽으로 올라가면서 무덤을 만들었다. 그리고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규모가 크다. 이는 대가야 왕이 힘이 점점 커지면서 더 높은 곳에 더 큰 무덤을 만들려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오늘날 무덤을 만드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담당자
대가야박물관 054)950-7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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