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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는 살아있다. 고대국가 대가야의 삶이 흐르는 역사의 현장


대가야의 성립

가라국의 성립

서기 300년이 지나면서 삼한의 작은 나라들은 더 기름진 농토를 차지하고 더 많은 노예를 가지기 위해 각자 주변 지역으로 땅을 넓혀 나가기 시작하였다. 때문에 많은 무기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토기 굽는 기술도 발전하여 이전보다 훨씬 단단한 토기를 만들었다. 또 강을 이용한 뱃길로 다른 지역과 교류하기도 하였다. 이 즈음에 고령에 있던 반로국은 힘을 키워 가라국(加羅國)이 되었는데, 후에는 대가야국으로 불려 졌다.

가라국 사람들의 무덤

서기 300년대 무렵인 가라국 사람들의 무덤은 삼한시대의 무덤보다 규모가 훨씬 커진다. 나지막한 산위에 길이 5m, 너비 3m, 깊이 1m, 정도 되는 깊고 큰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이중의 나무덧널을 설치하여 죽은 사람과 많은 껴묻거리를 넣었다. 또 이와 달리 구덩이 속에 돌을 쌓아 긴 네모꼴로 만든 돌덧널무덤도 만들어져 차츰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쾌빈리1호 나무덧널무덤

대가야읍 쾌빈리에 있는 가라국 사람의 나무덧널무덤 가운데 1호는 서기 370년 쯤에 만들어졌다. 무덤구덩이의 규모는 길이 482cm, 너비 305cm, 깊이 95cm로서 당시 이 지역 최고 지배층의 무덤이다. 이 무덤에서는 토기와 철기가 많이 출토되었는데, 지산리 고분군에서 출토되는 것들 보다 앞선 시기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고령의 옛 나라 이름

고령지역에 처음으로 나라의 이름이 등장한 것은 삼한시대로 당시의 이름은 미오야마국(彌烏邪馬國) 또는 반로국(半路國)이라 하였다. 이 작은 나라가 점차 성장하여 가라국(加羅國)이라 불리다가 400년대 이후 크게 발전하여 가야 사회를 대표하게 되면서부터 대가야국(大加耶國)이 되었다. 그 후 562년에 대가야가 멸망하면서 대가야군(大加耶郡)으로 불리다가, 통일신라시대의 경덕왕 때인 757년부터 지금의 이름인 고령군(高靈郡)이 되었다.
담당자
대가야박물관 054)950-7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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